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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정신증이라는 이름의 오류 — CEO × 피드백 부재 × 시스템

'AI 정신증'은 개인의 문제처럼 들리지만, CEO의 과신·AI의 무마찰·책임 전가는 모두 시스템이 만든 것이다. 개인의 인식을 고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 핵심 주장

"AI 정신증"은 개인의 문제처럼 들린다. 하지만 CEO가 AI를 과신하는 구조, AI가 그 과신을 교정하지 않는 구조, 잘못된 판단의 책임이 실무자에게 내려오는 구조 — 이 세 가지는 모두 시스템이 만들어낸 것이다. 개인의 인식을 고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 01 — "AI 정신증"이라는 프레이밍

Box 창업자 Aaron Levie가 최근 AI 정신증(AI psychosis) 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참조: Tech CEOs are apparently suffering from AI psychosis — TechCrunch (2026)

CEO들이 AI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고, 계약서를 생성해보고, "이거면 다 되겠다"는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포 전 코드를 검토하고, 환각 라이브러리를 찾아내고, 회사 고유의 계약 조건으로 모델을 조정하는 일 — 그 마지막 구간은 CEO의 일상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 난이도를 실제로 모른다.

흥미로운 건 Levie 자신이 AI 낙관론자라는 점이다. "헤드리스 소프트웨어가 미래"라고 주장하고 AI 스타트업에 엔젤 투자를 하는 사람, 즉 비판자가 아니라 지지자가 꺼낸 경고다. 그런데 바로 그 경고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정신증"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문제를 개인의 영역으로 가두고 있다.


// 02 — CEO가 현장을 모르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이 문제는 AI 이전에도 있었다.

Undercover Boss라는 TV 프로그램의 전제가 바로 이거다. CEO가 직접 현장에 내려가면 자신이 몰랐던 것들을 발견한다. 경영진이 현장과 멀어지는 것은 조직이 커질수록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현상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정보는 필터링되고 추상화되고 보기 좋게 가공된다.

그렇다면 AI가 특별히 더 문제인가, 아니면 그냥 오래된 문제의 새 버전인가.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 하나가 등장한다.


// 03 — 마찰이 사라진다

사람 조직에는 마찰이 있다.

실무자는 거절하고, 불만을 표출하고, "그건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 프로젝트가 어긋나면 티가 나고, 핵심 인력이 떠나면 신호가 된다. 이 마찰들이 축적되면서 CEO의 잘못된 인식이 — 느리더라도 — 결국 교정된다.

AI는 이 마찰이 없다. 시키는 대로 하고, 불만이 없고, 결과물은 일단 나온다. "이건 무리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며, 오히려 CEO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훌륭한지 설명해줄 수도 있다. HN 댓글 중 가장 날카로운 관찰이 여기 있었다.

"우리 CEO는 ChatGPT에게 HTML을 출력하라고 시킨 것을 '프런트엔드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ChatGPT는 분명 그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훌륭한지도 말해줬을 것이다."

문제가 누적되는 동안 피드백이 없다가 어느 순간 한꺼번에 터지는 구조다.

ClickUp이 그 예시다. 3,000개의 AI 에이전트를 도입하고 직원의 22%를 해고했는데, CEO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생산성이 100배인 조직(100x org)"을 원한다고 했다. 그 판단이 맞는지 틀린지를 교정해줄 내부 마찰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고, "마지막 구간의 노하우"는 해고된 사람들과 같이 떠난다.

AI가 CEO의 능력 부족을 보완하는 게 아니라, 능력 부족이 드러나는 것 자체를 지연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 04 — Levie의 처방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

Levie의 처방은 이렇다. CEO가 AI를 더 많이 써보고 한계를 직접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처방은 순환논리에 빠진다.

한계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현장을 아는 사람이다. 현장을 모르는 CEO가 AI를 써봐도, 그 경험은 착각을 교정하는 경험이 아니라 착각을 강화하는 경험이 되고, "이거면 다 되겠다"는 느낌은 더 선명해질 뿐이다.

이건 결국 메타인지의 문제다. 자신이 모르는 걸 모른다는 걸 아는 능력 — 그게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많이 써봐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해결 불가능한 건가.


// 05 — 근본은 시스템이다

이 지점에서 다른 논의가 들어온다. 고도로 분업화된 조직에서 정보를 취합해 최적 선택을 하는 것이 CEO의 역할이라면, 인간의 정보 처리 한계상 AI CEO로 대체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논리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반론이 나온다.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가. 그런데 이 반론은 현실 앞에서 힘을 잃는다.

현실에서 C레벨 임원이 실제로 책임을 지는가. 문제가 생기면 실무자가 책임지고, 매출이 떨어지면 직원들 연봉이 동결되고, C레벨 임원들은 일확천금을 챙기고 떠난다. 책임을 지지 않는 CEO라면 AI로 대체해도 달라지는 게 없거나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AI CEO로 대체해도 책임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AI CEO 위에 책임 안 지는 이사회가 있는 형태로. 결국 이 모든 논의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AI 도입이든, CEO 대체든, 처방들이 계속 기술이나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하지만 실제 문제는 조직과 시스템이 책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피드백을 제거하는 도구

"AI 정신증"이라는 제목은 이미 프레이밍의 오류를 담고 있다.

정신증은 개인의 문제다. 그래서 처방도 개인에게 향한다. CEO가 더 많이 써봐야 하고, 현장을 더 알아야 하고, 한계를 직접 경험해야 한다.

하지만 CEO가 현장을 모르는 것은 구조의 문제고, AI가 그 무지를 교정하지 않는 것은 AI의 본질적인 특성이며, 잘못된 판단의 비용이 실무자에게 내려오는 것은 시스템의 설계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개인의 인식을 고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인용된 연구들은 냉정하다. UC Berkeley 메타분석은 AI 도입과 총생산성 증가 사이에 "견고한 관계가 없다"고 결론냈고, MIT 연구는 에이전트가 아직 인간 수준 품질에 미달한다고 봤다. NBER은 체감 생산성이 측정 생산성보다 크다는 역설을 지적했는데, 위에서는 "잘 되고 있다"고 느끼는 동안 실제 성과는 그만큼 따라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전 글에서 다뤘던 AI 워싱의 구조가 여기서도 반복된다. AI 워싱이 가능한 이유는 나쁜 CEO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심 어린 착각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 워싱이 되는 구조 때문이다. 워싱인지 과신인지 본인도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

이것은 음모가 아니다. 구조다.

AI는 기존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 문제가 드러나는 속도만 늦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AI 도입의 성패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조직이 얼마나 건강한 마찰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가 된다. AI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조직이 AI를 제일 잘 쓸 수 있다. AI가 필요해서 도입하는 조직이 아니라, AI를 더하면 더 좋아지는 조직. 그리고 그런 조직을 만드는 것은 AI가 아니라 처음부터 시스템의 문제다.


참고 자료

  • TechCrunch (2026). Tech CEOs are apparently suffering from AI psychosis
  • UC Berkeley, California Management Review (2025). Seven Myths About AI and Productivity
  • NBER (2026). AI Adoption and the Productivity Paradox
  • MIT Future Tech (2026). Crashing Waves vs. Rising Tides — AI Automation from Worker Evaluations
  • Harvard Business Review (2026). Managers Are Struggling to Keep Up with the AI Productivity Boom
  • Layoffs.fyi (2026). Tech Layoff Trac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