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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알리바이 — 조용한 정리해고의 새 언어

AI 탓은 검증 불가능하고 모두에게 편리해서, 이미 진행 중이던 구조조정을 가리는 알리바이가 되고 있다.

// 01 —

한 가지 현상을 전혀 다른 톤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먼저 연구자들이다. Anthropic의 노동경제학자 Peter McCrory는 AI를 업무에 핵심적으로 사용하는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 사이에서 실업률의 유의미한 차이를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한국은행도 마찬가지다. 청년 고용 위축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불확실하다는 단서를 빼놓지 않는다. 신중하고, 조건부이고, 각주가 많다.

다음은 경영자들이다. "AI가 다 바꿔놨다." 단정적이고, 확신에 차 있고, 헤드라인이 된다.

같은 시기, 같은 현상을 두고 이렇게 다른 톤이 공존한다는 것 자체가 생각해볼 문제다. 실체가 아직 불확실하다는 사실과, 그 불확실성을 이미 확신처럼 써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모순이 아니라 — 어쩌면 인과 관계일 수 있다.


// 02 — 미국: 알리바이의 원형

Anthropic의 창업자 Dario Amodei는 AI가 향후 1–5년 내 주니어 사무직 일자리의 절반을 없앨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업률은 10–2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 발언은 검증된 수치가 아니라 예측이었다. 그런데도 이후 업계 전체가 이 문장을 인용하며 각자의 결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JPMorgan Chase의 CEO Jamie Dimon은 한발 더 나갔다. "우리는 이미 AI로 인해 사람들을 대체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다른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 발언에는 몇 명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검증되어 "AI로 인한" 대체로 분류됐는지 설명이 없다. 그럼에도 이 발언은 그대로 기사 제목이 됐다.

이 확신에 반박하는 목소리도 같은 시기에 나왔다. 하버드 경제학자들은 생성형 AI를 도입한 기업에서 주니어 채용이 감소했다는 사실을 실증했다. 동시에 신중하게 덧붙인다 — 데이터가 다루는 기간이 짧고, 장기적으로 기업들의 훈련·개발 방식이 달라지면 그림이 바뀔 수 있다고. 골드만삭스의 David Solomon조차 "나는 일자리 종말론 진영에 속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즉 확신에 찬 쪽과 신중한 쪽이 같은 시기에 나란히 존재했다. 그런데 살아남아 유통되는 건 확신에 찬 쪽이었다.


// 03 — 한국: 알리바이가 착지하는 방식

한국은행이 2025년 10월 발표한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보고서는 신중한 언어로 쓰여 있다. 최근 3년간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21만 1천 개 감소했다. 이 중 98.6%가 AI 노출도 높은 업종에서 발생했다 — 여기까지는 실증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여지를 남긴다. 이 흐름이 계속될지는 불확실하며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청년 고용을 늘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 채용시장은 이 신중함과 다른 속도로 움직였다. 진학사 캐치가 대기업 정규직 신입 공고를 전수 집계한 결과, 2024년 3,741건에서 2025년 2,145건으로 43% 감소했다. 2026년 3월에는 교육·출판(-90%), IT·통신(-73%) 등 전 업종이 동시에 급락했다. 이 정도의 낙폭을 "AI 확산의 초기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한은의 조심스러운 문장 하나로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한 결정들이 있었다. 한 UX·UI 디자이너는 회사가 AI 활용을 권장하며 디자인 업무에 AI를 도입한 뒤 "2년 안에 잘리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두 달 만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부서 디자인 직무는 전부 정리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인 회사도 권고사직을 고려 중인데 쉬쉬하고 있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발표는 없다. 채용 공고만 조용히 줄어든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배경이 하나 있다. 한국의 대기업 채용은 AI 이전부터 이미 구조 변화를 겪고 있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공채의 종말과 노동시장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정기 공개채용 비중은 2019년 39.9%에서 2023년 35.8%로 줄었다. 조사 대상 기업의 33.7%는 3년 내 공채를 전면 폐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입 채용을 줄이고 경력직·"중고 신입"을 선호하는 흐름은 AI 이전부터 이미 진행 중이었다. AI는 이 흐름에 올라탄 것이지, 이 흐름을 처음부터 만든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 이 변화를 설명하는 이름표는 온통 AI다.


// 04 — 알리바이가 작동하는 이유

이 알리바이가 이렇게 쉽게 통용되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검증 불가능성. "이 채용 축소가 정말 AI 때문인가"를 감사하는 기관은 없다. 경기 침체 때문인지, 수시채용 전환 때문인지, 단순 비용 절감 때문인지, AI 때문인지 — 이 네 가지를 가르는 회계 기준 자체가 없다.

둘째, 편리한 삼중 이득. AI 탓으로 돌리면 책임 소재가 기술로 옮겨가고, 노동자와 여론의 반발이 줄어들고, 투자자에게는 오히려 "효율화 스토리"로 포장된다. 해고를 발표하는 것보다 "AI 도입으로 구조 재편"이라고 말하는 쪽이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더 편하다.

셋째, 신중함과 확신 사이의 비대칭. 연구자의 조건부 문장은 각주로 남고, 경영자의 단정적 발언은 헤드라인이 된다. 정보의 비대칭이 아니라 톤의 비대칭이 서사를 결정한다.


// 05 —

우리는 그동안 AI 공포에 대해 "아직 실체가 없다"고 말해왔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실체가 없다는 바로 그 불확실성을, 이미 누군가는 결정을 정당화하는 언어로 쓰고 있었다.

공포가 과장인지 현실인지를 논쟁하는 동안, 그 논쟁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편리한 알리바이였다. 사람마저 효율화하고 싶었던 누군가가, 그 알리바이를 손쉽게 찾아냈다.


참고

  • 한국은행,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연공편향 기술변화를 중심으로」, 2025.10
  • 한국노동연구원, 「공채의 종말과 노동시장의 변화」, 2023
  • 진학사 캐치, 대기업 정규직 신입 채용공고 집계, 2024–2026
  • Hosseini, S. & Lichtinger, G., Harvard working paper, 2026.05
  • PwC, 「2026 Global AI Jobs Barometer」
  • Anthropic Economic Index, 2026